통장 하나 만드는 데 6주가 걸렸습니다
1년 넘게 살아보고 쓴 쾰른 이야기입니다. 대성당에 대해 제가 잘못 알고 있던 것과, 은행 계좌 하나에 6주를 쓴 과정을 적었습니다.
도착한 날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감탄만 잔뜩 적혀 있습니다. 1년 넘게 살고 나서 쓰는 글이라 이번엔 좀 다릅니다. 좋았던 것과 답답했던 것을 같이 적습니다.
대성당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
짓는 데 600년이 걸렸다는 말을 저도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. 살면서 들은 이야기는 좀 달랐습니다. 공사가 중간에 수백 년 방치된 기간까지 다 합쳐서 600년입니다. 계속 짓고 있었던 게 아니에요.
외벽이 검은 이유도 처음엔 원래 그런 돌인 줄 알았습니다. 2차 대전 때 그을린 자국이라고 합니다. 저렇게 큰 건물은 하늘에서도 잘 보여서 폭격 기준점으로 쓰였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, 검은색이 다르게 보였습니다.
이걸 알고 나서도 한동안은 앞에서 쓴 걸 그대로 뒀습니다. 틀린 걸 알면서 놔둔 거죠.
여름의 유럽은 밤이 늦게 옵니다
여름에는 밤 10시까지 밝은 날이 많습니다. 그래서 야경 사진 한 장 찍자고 저녁을 먹고도 한참을 더 기다렸습니다. 배가 고파질 때쯤 겨우 어두워지더군요.
솔직히 말하면 쾰른은 대성당을 빼면 볼 게 많은 도시가 아닙니다. 독일 안에서는 큰 도시에 들어가는데도 그렇습니다. 이건 제가 아무리 좋게 써도 안 되는 부분이라 그냥 적습니다.
은행에 갔다가 그냥 돌아왔습니다
여기부터가 이 글을 쓰게 만든 부분입니다. 슈파카세에서 계좌를 만들었습니다. 붉은 간판이라 빨간 은행이라고들 부르는 곳입니다.
번호표는 없습니다.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Bitte schön 소리가 들리면 그 직원에게 갑니다. 저는 계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이런 답을 들었습니다.
오늘 그 업무를 하는 직원이 자리에 없습니다. 다음 주 화요일에 가능합니다. 예약을 잡아드리겠습니다.
세 문장 다 한국 은행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습니다. 계좌를 만들려고 예약을 잡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까요. 그 자리에서 뭐라고 되물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.
주말을 보내고 화요일에 다시 갔습니다. 사방이 통유리인 방에 들어가서 간단한 면담을 하고 계좌를 만들었습니다. 이 과정은 영어로 됩니다. 독일어를 못 해도 여기까진 넘어갈 수 있어요.
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
그 자리에서 받은 건 없습니다. 카드 디자인만 골랐어요. 카드와 비밀번호는 등록된 주소로 우편으로 옵니다. 그것도 따로따로 옵니다.
카드는 닷새 뒤에 도착했습니다. 그런데 비밀번호가 없으면 카드는 그냥 플라스틱입니다. 저는 카드를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못 쓰는 상태로 지냈습니다.
비밀번호를 손에 쥐기까지 계좌를 만든 날부터 6주가 걸렸습니다. 그마저도 우편이 반송돼서 지점에 직접 가서 받아왔습니다. 그 6주 동안 밥값 계산할 때마다 지갑을 뒤졌어요. 그 장면만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네요.
Termin이라는 단어
이 방식이 은행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. 관청에서 일을 볼 때도 똑같습니다. 먼저 약속을 잡고, 그 시간에 정확히 갑니다. 이 단어를 Termin이라고 합니다.
합리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. 담당자가 준비된 상태로 앉아 있고 줄을 설 필요가 없으니까요. 그런데 저는 30년 넘게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라,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이 받아들이는 게 따로 놀았습니다.
유럽을 크게 그려놓고 오는 분들을 종종 봤습니다. 저도 그랬고요. 그 그림이 깨지는 자리는 대개 이런 사소한 창구입니다.